경비병이 된 어린양 - 요한계시록 7장
때때로 우리는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의 고난에 너무 집중하여 원하는 결과를 보지 못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고난은 인류의 구속으로 이어졌다. 그리스도의 구속받은 자들은 확실히 그와 함께 영원히 통치할 것입니다. 이 총체적인 이미지는 우리에게 용기와 희망을 줍니다.
부활절은 다시 살기 위해 죽은 삶에 관한 것입니다. 낙원을 떠나 이 땅에 사시며 다시 낙원으로 돌아가신 하나님에 관한 것입니다. 어린양이 되신 경비병이 다시 한번 양치기가 된 이야기입니다.
1. 구하는 경비원
아마도 성경에서 가장 좋은 이미지 중 하나는 목자이신 하나님의 이미지일 것입니다. 양치기인 다윗은 시편에서 이러한 권장 사항을 기록했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파수꾼이시로다"(시 23:1).
"그리하시면 주의 백성인 우리 곧 주의 목장의 양들이 생명을 인하여 주께 감사 하리이다"(시 79:13).
"요셉을 무리처럼 인도하시는 이스라엘의 파수꾼이여 들으소서"(시 80:1).
"그는 우리 하나님이시요 우리는 그의 기르시는 백성이요 그의 돌보심이니라"(시 95:7).
어느 날 다윗이 양들을 보고 있을 때 하나님은 목자와 같은 분이라는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목자 없이 먹이를 구한 양 떼는 없었고, 경비병도 전에 일을 하지 않은 적이 없었습니다. 경비병의 존재는 어린양의 확신이었다.
A. 우리 인간은 어린 양을 닮았습니다.
늙은 목자들은 양의 이름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양들은 목자의 음성을 알아차렸습니다. 또한 두 목자가 동시에 무리를 부르고 양도 함께 모이면 잘못된 목자를 따라간 적이 없습니다. 우리는 종종 똑똑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어리석은 점을 합니다. 우리는 무방비 상태인 경향이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를 삼키기 위해 사냥하는 사악한 사자로부터 공격을 받기 쉽습니다. 우리도 창고를 얻습니다.
B. 목자가 필요하다
우리가 넘어질 때 우리를 업신여기지 않고 대신 찾아주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우리가 뒤처져도 꾸짖지 않고 그의 품에 안아주고 그의 마음을 따라 우리를 안아주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2. 구속하시는 어린양
경비원은 결국 어린 양이되었습니다. 종교는 확실히 어린양이 경비원을 위해 목숨을 버려야 한다고 말할 것입니다. 목자는 틀림없이 자신의 어린양을 항구로 데리고 가서 모든 무게를 어린양의 머리에 얹고 자신의 범법을 인정할 것입니다. 어린양은 반드시 도살되어 그 피가 흘렀을 것입니다.
A. 예수님은 어린양이십니다.
"아래는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요한복음1:29). 훌륭한 목자이신 예수님은 어린양이 되어 우리의 허물을 위해 목숨을 버리셨습니다. 예언자 이사야는 더 자세한 내용을 다음과 같이 알려 주었습니다.
B. 예수님은 당신의 생명을 주셨습니다.
바로 여기에서 이미지 조정과 스토리가 변환됩니다. 인생은 사라집니다. 승리는 이겼습니다. 하나님은 십자가에 못 박히셨습니다. 구조자는 십자가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경비원은 희생양이 됩니다. "양"에 대한 단어는"가정에서 기르는 작은 양"을 의미합니다. 어떤 이유로든 죽임을 당하는 것을 보고 싶지 않은 종류입니다. 작은 가족 애완동물처럼 뾰족하고 순결한 예수님은 우리의 십자가를 짊어지십니다. 그의 피는 우리의 잘못을 용서하기 위해 흘려졌습니다.
3. 다스리는 목자.
예수님은 십자가에 머물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돌아가셨지만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사악한 자는 최후의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손실이 막혔습니다. 승리가 지배했습니다. 죽임을 당하신 어린 양이 다시 경비병이 되셨습니다. 그것이 부활절의 메시지입니다. 그것이 세상의 희망입니다.
A. 경비병은 확실히 우리를 신성하게 만들 것입니다.
그는 끝없는 시간 동안 통치하는 경비원이시며 그의 양떼가 그와 함께 통치할 것입니다. 요한은 그의 양 떼가 “어린양의 피로 그 옷을 씻어 희게”(계 7:14)했다고 주장합니다. "보좌 앞에 계신 어린양이 그들을 치시리니 생명수의 샘이 되도록 그들을 도우실 것이요 또 하나님이 정녕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시리라"(계 7:17 HCSB).
B. 목자는 반드시 우리를 집으로 인도할 것입니다.
우리는 분명히 생명수 옆에 있는 무한한 친환경 목초지에 있을 것입니다. 우리의 모든 고통과 분열도 사라질 것입니다. 위대한 내일의 저편에는 더 이상 슬픔도, 실망도, 상실도, 장례식도, 흉터도, 죄책감도, 암도, 암도, 암도 없을 것입니다. 더 이상의 실패, 더 이상의 슬픔, 더 이상의 혐오, 더 이상의 폭력.
마지막 생각.
어린양은 실제로 도살되었습니다. 돌아가신 어린양이 다시 살아나심은 “너희 마음의 목자요 수호자”(벧전 1:2)로 살게 되실 것입니다.
어린양이 되었다가 다시 경비병이 된 경비병에 관한 것입니다. 목자 없이 먹이를 찾던 양 떼는 없었고 목자도 의무를 다한 적이 없었습니다. 목자는 틀림없이 자신의 양을 성소로 데려가서 자신의 모든 무게를 양의 머리에 얹고 자신의 잘못을 인정할 것입니다. 훌륭한 경비이신 예수님은 어린양이 되셔서 우리 죄를 위해 목숨을 버리셨습니다. 그리고 경비병이 결국 어린양이 되고 또 한 번 경비병이 되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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